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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책을 멀리한다는 걸 알면서도 딱히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시절, 저는 그냥 같이 영화 한 편 틀었습니다. 엄마의 권유도 있었습니다. 어릴적 인상깊게 본 영화라고 합니다. 1996년작 <마틸다>였습니다. 아들은 옛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재미있게 보았고, 영화가 끝난 뒤 며칠간은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조금은 읽더군요. 오래가진 않았지만, 그 짧은 변화만으로도 이 영화가 뭔가를 건드렸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책 읽기 — 마틸다가 혼자 도서관에 간 이유
영화 초반, 마틸다 웜우드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집에서 혼자 책을 찾아 마을 도서관까지 걸어갑니다. 사기꾼 중고차 판매상인 아버지, 외모에만 집착하는 어머니, 무신경한 오빠. 그 집에서 마틸다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나선 거였죠.
저는 그 장면이 유독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아이가 지식을 향해 혼자 걷는다는 설정이 이렇게 뭉클할 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어릴 때 그렇게 책을 찾아다녔더라면 지금쯤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로알드 달의 원작 소설이 가진 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달의 글에는 아이들의 내면을 꿰뚫는 신랄함이 있고, 어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냅니다. 자기 계발(self-directed learning), 즉 외부 자극 없이 스스로 배움을 찾아가는 태도를 마틸다는 걷는 것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자기 계발이란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면의 결핍과 호기심이 만나 만들어지는 자발적 학습 의지를 말합니다.
아들과 이 영화를 본 뒤 달라진 건 딱 하나였습니다. 며칠간 책을 펼쳤다는 것.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 며칠이 저에게는 꽤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 마틸다는 아무런 안내 없이 혼자 도서관을 찾아가 독서를 시작함
- 달의 원작은 어른들의 결함을 숨기지 않고, 아이 독자에게 세상의 진실을 그대로 보여줌
- 영화의 책 읽기 장면은 자기 계발(self-directed learning)의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묘사 중 하나
좋은 선생님 — 허니 선생님이 존재하는 이유
크런쳄 홀 초등학교의 교장 아가사 트런치불은 말 그대로 공포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을 창밖으로 던지고, 무의미한 체벌로 학생들을 지배합니다. 저는 트런치불처럼 극단적인 교장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제가 학교를 다닐적에는 체벌도 있었고, 혹독한 운동으로 벌을 대신 받는 그런 시절이였습니다. 그 경험이 있어서인지 트런치불 장면이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2026년에는 이상하게 보입니다만, 체벌이 있었던 1990년대에 살았던 저는 그때 트런치불같은 선생님이 있었더라면 정말 무서웠을 것 같아서 영화속 아이들의 반응에 공감도 되었습니다.
반대편에 허니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녀는 마틸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능력을 믿어주고, 아이 곁에 남습니다. 사회정서학습(SEL, Social Emotional Learn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SEL이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타인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말하는데, 학업 성취보다 이 기반이 먼저 자리 잡아야 아이가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교육 이론입니다. 허니 선생님이 마틸다에게 해준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팸 페리스가 연기한 트런치불은 그 반대 극단을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그렇게 극적으로 나쁜 어른만 있는 게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형태로 아이를 방치하는 어른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허니 선생님처럼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어른이 더 귀하고, 더 필요합니다.
정서적 학대 — 시스템이 보지 못하는 상처
마틸다의 부모는 아이를 때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복잡합니다. 아버지는 딸의 지능을 비웃고, 어머니는 존재 자체에 무관심합니다. 이것이 정서적 학대(emotional abuse)입니다. 여기서 정서적 학대란 신체적 폭력 없이 언어적 비하, 무시, 냉담한 태도 등으로 아이의 자존감과 심리 발달을 지속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학대가 아동 보호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점입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보다 발견이 어렵고, 피해 아동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 사법 제도상 폭력 행위가 발생해야 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마틸다 같은 아이는 실질적인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아동 보호 체계(child protection system)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학대나 방임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복지·법률·교육 기관이 연계하여 작동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출처: 유니세프(UNICEF)는 이 체계가 예방·신고·개입·사후 지원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현실에서는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담당자 과부하 상태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에서 마틸다가 허니 선생님의 집으로 입양되는 결말은 보기엔 깔끔하지만, 실제 양육권 이전 절차는 그렇게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직접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해본 입장에서, 그 과정에는 서류와 기다림과 감정적 소모가 겹겹이 쌓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이 현실의 이상을 담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한심한 어른들 속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학교 안에서 자주 만나는 올바른 어른이 가장 현실적인 구조망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틸다 영화 몇 살부터 보여줘도 괜찮나요?
A. 미국 기준 PG 등급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이면 큰 무리 없이 볼 수 있습니다. 트런치불의 과장된 폭력 장면이 다소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만화적 연출로 처리되어 있어 공포보다는 우스꽝스러움에 가깝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보았을 때도 무서워하기보다는 웃으면서 봤습니다.
Q. 마틸다 원작 소설이랑 영화랑 많이 다른가요?
A. 기본 줄거리와 주요 인물 구성은 동일하지만, 영화는 로알드 달 원작이 가진 건조한 어두움을 대니 드비토 특유의 유머로 조금 더 밝게 풀어냈습니다. 달 본인은 자신의 작품이 윌리 웡카 뮤지컬처럼 밝고 경쾌한 방식으로 각색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마틸다 영화는 그나마 원작의 분위기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Q. 트런치불 역할 배우가 누구인가요?
A. 영국 배우 팸 페리스(Pam Ferris)가 연기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로 팸 페리스를 꼽습니다. 자연재해처럼 강렬한 존재감으로 화면을 장악하는데, 달이 원작에서 의도한 공포스럽고 기괴한 어른의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Q. 영화 마틸다에서 염력 능력은 어떻게 설명되나요?
A. 영화는 마틸다의 염력(telekinesis), 즉 물체를 눈빛과 집중력만으로 움직이는 능력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다루면서도, 이것이 억눌린 내면의 에너지가 발현되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여기서 염력이란 외부의 힘 없이 정신적 집중만으로 물리적 대상을 이동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달의 원작에서도 이 능력은 마틸다의 지적 자극이 가정 안에서 충족되지 못할 때 터져나오는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결론
마틸다는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영화지만, 어른이 보면 오히려 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과장스러운 어른 캐릭터들, 기괴하게 큰 초콜릿 케이크 장면, 만화처럼 움직이는 트런치불까지. 그 우스꽝스러움 뒤에 정서적 학대, 아동 보호 체계의 한계, 좋은 선생님의 역할이라는 꽤 묵직한 주제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남은 건, 결국 한 아이의 삶을 바꾼 건 시스템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허니 선생님 한 명이 마틸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요즘 이런 아동 영화가 잘 나오지 않는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순수한 아역 배우들의 내면 연기가 돋보였고, 무거운 주제를 억지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만화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냈습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아이와 함께 보시는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