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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볼 만한 코미디 영화를 찾다가 번번이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웃기긴 한데 19금이거나, 전체 관람가인데 너무 유치하거나. 에반 올마이티는 그 딱 중간 어딘가에 있는 영화입니다. 저도 처음엔 '브루스 올마이티 후속편이면 좀 밋밋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아이들 반응을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에반 올마이티가 후속작이라고?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 2007)는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 2003)에서 파생된 스핀오프(spin-off) 작품입니다. 스핀오프란 원작의 주연이 아닌 조연 캐릭터를 중심으로 새롭게 전개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짧게 등장했던 뉴스 앵커 에반 백스터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됩니다.
저는 브루스 올마이티를 먼저 본 뒤 에반 올마이티를 봤는데, 사실 아이들과 함께 볼 때는 순서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브루스 올마이티는 15세 관람가 수준의 성인 유머가 섞여 있어서 어린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보기엔 조금 껄끄러운 장면이 있습니다. 에반 올마이티는 전체 관람가라 그 부분에서 훨씬 함께 시청하기 편했습니다.
감독은 브루스 올마이티와 동일한 톰 새디악(Tom Shadyac)이 맡았습니다. 스티브 카렐(Steve Carell)과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이 각각 에반 백스터와 신(God) 역할로 돌아왔고, 여기에 로렌 그레이엄, 존 굿맨이 합류했습니다. 제작비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가장 비싼 코미디 영화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큰 규모였습니다(출처: 위키백과 에반 올마이티).
노아의 방주를 현대 의회로 가져온 발상, 실제로 보면 어떨까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Noah's Ark)입니다. 성경 속 노아 이야기를 그대로 현대 미국 의회 정치 배경에 이식한 것인데,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저는 '억지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막상 보니 걱정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줄거리에 대해서 간략히 이야기 하자면, 주인공 에반 백스터는 버펄로 출신의 전직 지역 뉴스 앵커에서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인물입니다. 의욕 넘치게 '세상을 바꾸겠다!!'라고 공언하자마자, 신이 나타나서 정말로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문제는 동네 한복판, 신도심 주택가 한가운데서 거대한 목선을 건조해야 한다는 것이죠. 매일 아침 자동으로 자라나는 수염(이 장면에서 아이들이 엄청 웃었습니다), 사무실에 쌓이는 목재 더미, 집 앞마당에 우르르 모여드는 동물들. 이 장면들이 황당하면서도 영화니까 가능한일이지. 하며 아이들은 큰 웃음과 미소로 영화를 시청했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게 본 장면은 탐욕스러운 척 롱(Chuck Long) 의원이 추진하는 공공 토지 통합법(CINPlan)과 방주 건조가 서로 맞물리는 구조였습니다. CINPlan이란 공공 토지를 민간에 넘기는 내용의 법안인데, 후반부로 가면 이 법안이 왜 문제인지 홍수 장면으로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른 눈에는 환경 파괴에 대한 은유로 읽히고, 아이들 눈에는 그냥 엄청난 물난리로 보이는 구조가 꽤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신과 에반의 첫 번째, 두 번째, 마지막 대화 장면 — 모건 프리먼 특유의 온화한 연기가 영화 전체의 무게 중심을 잡아줍니다
- 동물들이 한마음으로 방주를 돕는 장면 — 아이들이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 의사당 앞 홍수 장면 — 어른 입장에서 가장 통쾌한 카타르시스
- 에반 가족 전체가 함께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 — 억지 감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본 후기
저는 10년 이상 지난 영화들을 찾아서 아이들과 함께 보는 편입니다. 제가 한참 어렸을 때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던 그 감정을, 아이들이랑 같이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입니다. 에반 올마이티도 그 목록에서 꺼낸 영화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이들이 '신'이라는 개념을 낯설어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는 그 걱정이 전혀 필요 없었습니다. 눈이 찌푸려질 만큼 종교 메시지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노아 이야기를 배경으로 가져왔을 뿐이고, 실제 영화에서 신은 모건 프리먼이 연기하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노인 아저씨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신을 의인화 하면 저런 모습이구나', '갑자기 확확 나타나니 신기하다' 는 인상을 줬던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아이들이 가장 강하게 반응한 건 동물 장면이었습니다. 기린, 코끼리,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줄줄이 나타나서 방주 건조를 돕는 장면에서 정말 엄청 웃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재미있는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이 영화를 먼저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가장 확실한 추천 이유가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따지면 브루스 올마이티가 훨씬 탄탄합니다. 에반 올마이티는 약간 B급 감성이 묻어나는 연출이 있고, 메시지가 다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편입니다. 그 부분이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흥행 수익이 제작비 1억 7500만 달러를 밑돌았다는 점이 그것을 말해줍니다(출처: 위키백과 에반 올마이티). 하지만 저는 아이들과 함께 보는 가족 코미디로서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랜덤 친절 행위(Random Act of Kindness)
영화 안에서 신이 에반에게 여러 번 언급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랜덤 친절 행위(Random Act of Kindness), 줄여서 ARK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ARK란 특별한 이유 없이 주변 사람에게 작은 친절을 베푸는 행동 전체를 뜻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것이 노아의 방주(Ark)와 같은 철자라는 언어유희로 쓰입니다.
이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 저는 '메시지가 좀 과하게 직접적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브루스 올마이티가 사랑과 믿음이라는 주제를 비교적 간접적으로 풀어냈다면, 에반 올마이티는 ARK를 직접 대사로 여러 번 강조합니다. 그게 영화의 설교적인 느낌을 강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기억에 남는 건 모건 프리먼의 존재감입니다. 어떤 장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 특유의 안정감이 영화 전체의 허술한 부분을 상당히 메워줍니다. 솔직히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한 건 주인공인 스티브 카렐의 코미디 연기보다 신과 에반이 나누는 대화 장면들이었습니다. 특히 에반의 아내 조앤과 신이 나누는 대화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깊이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에반 올마이티를 브루스 올마이티 안 보고 봐도 되나요?
A. 됩니다. 에반 올마이티는 브루스 올마이티의 스핀오프 작품이라 독립적으로 감상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에반 백스터라는 캐릭터가 브루스 올마이티에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전작을 모르더라도 이 영화만으로 완결된 이야기가 됩니다. 저도 아이들과 볼 때 브루스 올마이티 설명 없이 바로 시청하였습니다.
Q. 종교적인 내용이 많아서 불편하지는 않나요?
A. 제가 직접 봤을 때 기독교적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장면은 많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노아 이야기를 배경으로 가져온 것이고, 신의 존재가 영화 안에서 유머러스하고 친근하게 묘사됩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종교적 설명이나 전도성 대사는 거의 없습니다. 종교가 없는 분들도 그냥 판타지 코미디로 보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Q. 몇 살 아이들부터 같이 볼 수 있나요?
A. 전체 관람가 영화라 연령 제한은 없습니다. 제 경험상 초등학생 정도면 내용을 충분히 따라가면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많이 나오고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장면이 많아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도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노아의 방주가 뭔지, 의회가 뭔지 등을 아이가 궁금해할 수 있어서 그 부분은 보면서 짧게 설명해주면 더 잘 즐길 수 있습니다.
Q. 브루스 올마이티랑 비교해서 어떤 게 더 재미있나요?
A. 완성도나 코미디의 디테일은 브루스 올마이티가 한 수 위 라고 생각 합니다. 짐 캐리 특유의 과장된 몸 개그와 빠른 템포가 에반 올마이티와는 다른 재미를 줍니다. 반면 에반 올마이티는 가족 단위로, 특히 어린 아이들과 편하게 보기에는 더 나은 선택입니다. 저는 두 편 모두 봤는데, 중학생 이상의 자녀와 본다면 브루스 올마이티를, 아이들과 함께 본다면 에반 올마이티를 권합니다.
결론
에반 올마이티는 흥행에서도, 비평에서도 성공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과 함께 웃으면서 봤고, 보고 나서 한동안 아이들과 수염아저씨의 변화 모습과, 배를 만드는 그 스케일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 나눈 영화입니다. 그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코미디를 찾고 있다면,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영화를 원한다면 가볍게 볼만합니다. 브루스 올마이티를 먼저 본 뒤 이어서 봐도 좋고, 에반 올마이티 단독으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